“눈을 감았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현실 같기도, 전혀 낯설기도 한 그곳. 나는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단순한 상상일까, 아니면 내 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일까? 뇌는 잠든 줄 알았는데… 혹시, 그때 진짜 나를 마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매일 잠을 자고 있지만 생각만하고 찾아 보지 않은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겠습니다.
잠든 뇌는 깨어 있다? 꿈이 시작되는 순간
사람들은 흔히 잠들면 뇌도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정반대의 사실을 발견했다. 수면 중, 특히 '렘수면'이라 불리는 단계에서 뇌는 깨어 있을 때만큼이나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시기는 Rapid Eye Movement(빠른 안구 운동)이라는 특징적인 현상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는 근육이 거의 완전히 마비되지만, 뇌는 다양한 시각·청각 정보와 감정을 가상으로 만들어낸다. 바로 '꿈'이다.
꿈은 렘수면뿐 아니라 비렘수면 단계에서도 발생하지만, 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렘수면의 꿈은 일반적으로 더 생생하고 이야기 구조를 지니며, 감정적으로 강렬한 경우가 많다. 반면 비렘수면의 꿈은 단편적이고 덜 감정적이며, 기억에도 덜 남는다. 이는 뇌의 어떤 부위가 더 활발하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렘수면 중에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 장면을 연결하는 해마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반면, 논리적 판단과 통제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비교적 덜 활성화된다.
이처럼 꿈은 뇌가 단순히 '쉬는 상태'가 아닌, 특정 회로들이 다시 배선되거나 감정 정보를 정리하는 복잡한 활동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나 상징적인 장면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뇌가 논리보다 감정과 기억을 우선시하여 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꿈은 왜 생기는 걸까? 뇌가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는 법
우리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90분마다 렘수면 주기를 경험하며, 한밤 중 여러 차례 꿈을 꾼다. 그렇다면 뇌는 왜 이렇게 정기적으로 '꿈을 꾸는 활동'을 반복하는 걸까? 여러 학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 이론이 있다.
첫 번째는 ‘기억 정리 가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꿈은 뇌가 하루 동안 받아들인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중요한 기억은 강화하며, 불필요한 기억은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이다. 해마와 대뇌피질 간의 신호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렘수면 중에 특히 이 활동이 두드러지며, 꿈의 내용에 현실에서 경험한 단서들이 종종 섞여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두 번째는 ‘감정 처리 가설’이다. 스트레스, 불안, 분노 같은 강한 감정은 수면 중에도 뇌에 영향을 미친다. 렘수면 동안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감정들을 해소하거나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이 꿈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실제 상황에서 더 나은 정서적 반응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진 사람은 반복적이고 고통스러운 악몽을 자주 경험하는데, 이는 감정적 상처가 아직 뇌에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진화론적 가설’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꿈이 우리 조상들에게 생존에 유리한 ‘가상 훈련장’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맹수에게 쫓기는 꿈이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꿈은, 뇌가 현실에서의 위협에 대응할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특히 위험을 예측하고 모의훈련을 하는 꿈의 경향성과 맞물려 흥미로운 가설로 주목받고 있다.
꿈은 무의식의 창일까? 프로이트에서 현대 뇌과학까지
'꿈'이라는 주제를 말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을 무의식의 표현이자 억압된 욕망의 발현으로 해석했다.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욕망이나 감정이 상징적인 형태로 꿈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한때 전 세계 심리학계를 강타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해석하려는 습관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은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뇌는 렘수면 중 외부 자극으로부터 차단된 상태에서 내부 신호, 즉 저장된 기억이나 감정, 이미지 등을 무작위로 재조합한다. 이를 ‘활성화-통합 이론’이라고 한다. 즉, 꿈은 무작위적 신경 활성에 대해 뇌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왜 꿈이 때로는 기묘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도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꿈은 단지 ‘혼란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뇌는 무작위적으로 생성된 꿈조차도 의미 있는 서사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 상태나 현재 삶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복해서 비슷한 꿈을 꾼다면,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 문제의 신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반복 꿈, 악몽, 상징적 이미지 등을 통해 개인의 정신 건강 상태를 진단하기도 한다.
꿈은 단순한 뇌의 오작동도, 단순한 상상의 나래도 아니다. 잠든 동안 뇌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며,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고 때로는 우리도 모르는 무의식을 드러낸다. 꿈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밤마다 펼쳐지는 나만의 작은 우주, 그 안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뇌의 비밀이 숨어 있다. 오늘 밤 당신의 꿈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