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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블랙홀, 진짜로 우리가 ‘본’ 걸까?

by juns1007 2025. 4. 24.


2019년 4월,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뉴스 헤드라인은 이렇게 외쳤죠.

“인류, 블랙홀을 처음으로 보다!”

하지만, 이쯤에서 누군가는 묻습니다.
“정말로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익숙한 셀카나 풍경 사진처럼, 블랙홀도 진짜 눈으로 본 걸까요?
사실 이 질문 속에는 블랙홀과 과학 이미지, 그리고 우리가 보는 ‘시각의 본질’까지 아우르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 진실, 이 주제로 글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사진 속 블랙홀, 진짜로 우리가 ‘본’ 걸까?
사진 속 블랙홀, 진짜로 우리가 ‘본’ 걸까?

‘보았다’의 의미 – 블랙홀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


블랙홀(Black Hole)은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의 검은 구멍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의 중심에는 엄청난 밀도의 질량이 존재하며, 그 중력은 너무 강해서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 경계를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릅니다.
즉, 사건의 지평선 안쪽은 어떤 파장도, 어떤 신호도, 어떤 정보도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블랙’입니다.

결론적으로, 블랙홀을 ‘직접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촬영한 건 ‘그림자’


2019년에 공개된 블랙홀 이미지, 정확히는 M87 은하 중심의 초거대 블랙홀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 장면을 담아낸 것이 바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 EHT)이죠.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망원경
EHT는 하나의 망원경이 아니라, 전 세계 8곳의 전파 망원경을 동기화하여 지구 전체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구성한 국제 프로젝트입니다.
하와이, 칠레, 남극, 스페인, 멕시코,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망원경들이 1초마다 엄청난 양의 전파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 데이터는 수톤 무게의 하드디스크에 담겨 항공편으로 MIT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로 운반되었습니다.

 

실제 ‘사진’이 아닌, ‘합성 이미지’
중요한 점은 이 이미지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이 아니라, 전파 데이터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합성한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EHT 팀은 수천 가지의 시뮬레이션과 모델을 바탕으로, 물리 법칙과 관측 데이터를 종합하여 최종 이미지를 생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 블랙홀 이미지는,

“블랙홀 주변을 휘도는 빛의 궤적과 블랙홀의 그림자(shadow)”를 시각화한 ‘과학적 이미지’입니다.

이건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물리학 + 천문학 + 컴퓨팅의 정수죠.

 

블랙홀 이미지가 주는 과학적, 철학적 의미

 

그렇다면 굳이 보이지도 않는 블랙홀을 왜 찍으려 한 걸까요?
그 이미지가 단순히 ‘비주얼’로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하다
EHT가 촬영한 블랙홀의 그림자는, 이론적으로 예측된 것과 거의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즉,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블랙홀의 형태와 빛의 휘어짐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 것입니다.
이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강력한 이론 중 하나가 극한의 중력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철학
우리가 블랙홀을 ‘봤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한 시각화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전자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보는 것’과 유사합니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데이터와 이론을 기반으로 시각화된 세계를 통해 우리는 과학적으로 ‘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더불어, 이 이미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과학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확장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비밀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블랙홀은 어둡지만, 우리의 시선은 빛난다


‘사진 속 블랙홀, 진짜로 우리가 본 걸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입니다.
그 이미지는 우주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 기술, 협력, 그리고 끝없는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EHT는 궁수자리 A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더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블랙홀의 동적 영상(비디오)까지 우리에게 보여줄 예정입니다.
그때 우리는 또 한 번 묻게 되겠죠.

“이제 우리는 블랙홀을 보는 것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